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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한잔 時 하나126

참 오래 걸렸다 / 박희순 참 오래 걸렸다 / 박희순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일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 걸렸다. 2012. 6. 10.
빛 / 최해춘 빛 / 최해춘 빛이 스며드는 곳에는 기쁨이 있다. 빛이 스며들지 않는 곳에는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있다. 빛을 찾아가는 나그네길에는 저물지 않는 태양이 있다. 2012. 6. 9.
아침 / 신혜림 아침 / 신혜림 새벽이 하얀 모습으로 문 두드리면 햇살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난 대지는 부산스럽기만 하다. 나들이를 꿈구며 이슬로 세수하는 꽃들 밤을 새운 개울물 지치지도 않는다 배부른 바람 안개를 거둬들이며 눈부시게 하루의 문을 연다 2012. 6. 5.
오월 / 피천득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 2012. 5. 18.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 이해인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 이해인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 2012. 5. 15.
5월이 오면 / 황금찬 5월이 오면 / 황금찬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숲내를 풍기며 오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 2012. 5. 9.
三夢詩(삼몽시) / 서산대사 主人夢說客(주인몽설객) 주인이 꿈에서 손과 이야기하고 客夢說主人(객몽설주인) 손이 꿈에서 주인과 이야기하니 今說二夢客(금설이몽객) 지금 두 꿈을 이야기하는 손도 亦是夢中人(역시몽중인) 또한 꿈속의 사람이구나. 三夢詩(삼몽시 : 세꿈에 관한 시) / 서산대사 2012. 5. 2.
복사꽃 피는 마을 / 오순택 복사꽃 피는 마을 / 오순택 봄 해살 꽃물인양 마당귀를 적시는데 건넛마을 복사꽃 내음이라도 맡고 왔는가. 박새는 마을을 돌며 풀피리를 불고 있다. 2012. 4. 23.
봄 시내 / 이원수 봄 시내 / 이원수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벗고 찰방찰발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 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 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2012. 4. 13.
벚꽃이 필 때 / 용혜원 벚꽃이 필 때 / 용혜원 곷봉오리가 봄 문을 살짝 열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더니 봄비에 젖고 따사로운 햇살을 견디다 못해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봄소식을 전하고자 향기를 내뿜더니 깔깔깔 웃어 제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가득하다 나는 봄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없거늘 .. 2012. 4. 10.
자연의 시간표 / 오정방 자연의 시간표 / 오정방 자연 그대로 간다 창조주가 애초에 설계하고 만든 대로 순리에 따라 조용히 순응하며 간다 억지를 쓰지 않는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 탐하여 뒤돌아보지 않고 역리는 한사코 배척하며 간다 지은 바대로 그저 물 흐르듯이 아무 것도 해치지 않고 서두름도 지체함도 .. 2012. 4. 5.
십년 / 도종환 십년 / 도종환 봄날 환한 등불같은 꽃을 백개의 가지마다 내걸어 봄을 비로서 완성에 이르게 하는 목련나무는 소한의 눈보라 대한의 된바람 속에서 제몸을 단련시킵니다 저희에게도 혹독한 세월이었습니다 들판의 삭풍속에 던저져 있는 듯하던 지난 십년은 그러나 목련꽃이 옥돌보다 더.. 2012. 4. 4.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곷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 2012. 3. 30.
바다로 가는 길 / 천상병 바다로 가는 길 / 천상병 한줄기 지평(地平)의 거리는, 산에서 또 다른 산을 향한, 하늘의 푸른 손이었습니다. 불가항(不可抗)의 그 손에 잡힌 산산(山山)의 호수에 언제 새로운 소식(消息)이 있어, 들판 위에는 무수한 길이 실로, 무수한 길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내일 나는 바다로 가자. 2012. 3. 27.
나의 가난함 / 천상병 나의 가난함 / 천상병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 2012.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