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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돌아 서는 길 눈물을 훔치며...

by 감홍시 2006. 6. 12.

 

일과를 마치면 산보 삼아 운동 삼아서 자주 가는 '풍암'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길을 걸을 때면 이상하게도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지쳐 있을 때에도 편안함을 주는 길이기에 거의 하루도 걸러지 않고 걷다 시피 하는 시골의 작은 마을 이랍니다.

 

 

 

거의 매일을 가다 시피 하다가 두달 정도 지났을 무렵엔 지나가며 서서이 동네분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게 되었고, 지나 갈 때마다 짖어 대던 과수원과 대문 한켠에 있는 개들도 이제는 지나갈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짖게 되더군요.

 

 

이주일 전 쯤엔 마을을 지나가다 길가에 심겨져 있는 보리 하나를 뽑아서 입에 물고는 길을 가려 하는데 뒤에서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왔누?' 라며 물음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할아버지 사진을 찍어 드릴까요?' 라고 여쭤 보니 할아버지께서 쑥스러운듯이 미소를 지으시길레 사진을 찍어 드렸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할아버지와 담소를 하다가 할아버지께서 집에 아무도 없으니 말동무 겸 술친구를 잠시 하다가 가라고 하시길레, 고마운 마음에 할아버지를 따라서 집으로 들어도 갔습니다.

 

 

 

뒤돌아 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나즈막한 시골 기와집과 황톳빛 밭의 색감도 좋고해서 할아버지의 뒷모습도 찍어 드렸답니다.

 

 

 

집으로 들어 가서는 할아버지께서 쇠주와 안주를 주섬 주섬 꺼내어 놓으시고는 쇠주 잔 두개에 쇠주를 따르시고는 미소를 띄우시며 '한잔 해' 라고 하시길레 쑥스러워하며 마셨습니다.

 

 

여든여덟의 할아버지...

 

쇠주 한잔에 이야기 하나, 쇠주 한잔에 이야기 둘, 쇠주 한잔에 이야기 셋....

 

이렇게 술잔을 비우면서 할아버지의 살아 오셨던 이야기와 가족들 이야기, 친구분들 이야기, 마을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암소 누렁이 이야기를 두런 두런 하실 때 고개를 돌려 쇠주를 홀짝 홀짝 마시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어느듯 술기운 오르신 할아버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 나셔서는 산달이 다 되어 가는 암소 누렁이 보러가자고 하십니다.

 

누렁이를 보며 꼬리를 치켜 들고는 조만간 나올 송아지를 생각 하셔서인지 연신 얼굴에 웃음이 가득 하더군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한 시간 가량을 이야기 하다가 일어설 무렵 동네에 사시는 젊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오셨길레 또 사진을 찍어 드렸습니다.

 

 

어색해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짖궂게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시죠...두손 꼬옥 잡으시고 사랑하는 표정 함 지으보세요' 라는 요구를 하였더니, 할아버지의 얼굴은 붉어 지시고, 할머니의 얼굴은 새색시 마냥 웃으시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해 하시며 손을 잡으시더군요.

 

 

한컷을 찍고 또 한컷을 찍고 그렇게 찍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재미 있는 이야기 짖궂은 이야기,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더 많이 사랑하시네요' 하며 어른신들을 놀려 대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진을 찍고서 이 주일 가량 흐른 다음 토요일 아침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진을 가지고서 다시금 그 마을에 산보를 갔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문들이 모두 잠겨 있어서 다음 기회에 와서 드릴려고 하다가, 옆집에 찾아 가서는 할아버지 집에 아무도 안 계셔서 사진을 좀 맡길수 있을까 여쭈어 보았답니다.

 

옆집 아저씨께서는 할아버지께서 며칠전 위독 하셔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는 데 자신도 일 마치고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려고 준비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아마도, 제가 찍어 드린 할아버지의 사진이 할아버지 생전의 마지막 사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쇠주를 적게 마시고 할아버지를 좀 더 정성스러이 찍어 드릴 걸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사진을 건네 드리고...

 

돌아 서는 길,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군요.

 

할아버지께서 저 세상에 가시는 동안만이라도 편안하게 계시다가 하늘 나라로 가시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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