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재학 시절...누구나 한번 즈음은 접해 보았을 홍사용님의 시...
그 당시에는 밑줄 긋고...줄 밑에 문법적 해설 달아가며 입시 준비를 위해서 접했을 때에는 왜 이리 이 시가 길고 따분 하였던지...
시간이 어느듯 흘러.....
이제는 생활해 나가며 간혹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홍사용 시인님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를 간혹 보곤 한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서 많은 시인들이 나라를 읽은 아픔을 이야기하고, 3.1 운동의 좌절에 허무주의로 돌아선 시인들도 많지만, 역시 '시' 라는 것은 그 당시대의 느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느껴지는 감흥은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시의 멋진 맛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홍사용]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오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하겠나이다 다른것도 많지오마는……
“맨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오마는 그것은 `으아―'하는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오마는……
이것은 노상 왕(王)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王)이 처음으로 이 세상(世上)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 데 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오고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가숭이 어린 왕(王)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王)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리었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는 졸으실 때에는 왕(王)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王)의 뺨에 떨어질 때면 왕(王)도 따라서 시름 없이 울었소이다
열 한살 먹든 해 정월(正月) 열 나흔날 밤 맨재텀이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짧은가 보랴고
왕(王)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목아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王)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山)타령을 따라 가다가 건너 산(山)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군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면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풀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 없는 어린왕(王)나는 동무라하고 쫓아 가다가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寒食)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王)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따어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어라”
아그때부터 눈물의 왕(王)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山)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실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하고 앉았더이다.
아뒷동산 장군(將軍)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니 많이 왕(王)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王)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王)!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王)의 나라로소이다
<백조3호, 1923. 9>
언제고 다시금 시간 흐른 뒤에 이 시를 읽을 때엔 어떠한 감흥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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