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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한잔 時 하나

내가 바다에 가는 이유 / 최석우

by 감홍시 2012. 6. 15.

 

 

 

내가 바다에 가는 이유 / 최석우


사막을 비틀거리던 어린 왕자처럼
나의 별과 나의 꽃이 그리운 날
나는 바다에 간다
내 머리 위에 내가 돌아가야 할 별은 없을지 모르나
바다에 가면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을 꿈꾸는
새의 알이 하나씩 생겨난다

 

 

 

 

 

 

 

 

 

 

 


한쪽에서 해가 뜨고
한쪽에서 해가 지는 마량 바다
늘상 일출을 보고 일몰을 보는
방파제 위의 병사는
그것이 내가 부러워하는 행복인지 모르면서
담배로 편지를 쓰고 담배로 편지를 찢는다
해풍에 찌든 깃발을 휘날리며
포구로 배가 들어오고
바다새가 서른 마리 따라온다
어린 왕자처럼
슬픈 날 해 지는 것을 보면서 자랐을 어부가
그의 별로 돌아와
녹슨 닻을 던진다
의미 없는 내 권태를 부수어 버린다
어둠 속에 눈을 감는 수평선을 따라
나도 눈을 감고
비릿한 바람에 나를 맡긴다
가녀린 내 숨을 버리고
넉넉한 바다 숨을 배운다
멈출 것처럼 위태롭던 내 심장이 고요히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가슴 속 빈 둥지에
뜨겁게 들어서는 생명의 기척이 느껴진다
가만히 눈을 뜨면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늘이 되어 있다
나는 이유를 묻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을이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던
흐린 오후
나는 마량 포구에 갔었다
고갈되는 순수 속에서도
내 심장을 뛰게 하고
하늘 위의 하늘을 향해
더 높은 비상을 꿈꾸는 새의 알을 잉태하러
납빛 하늘
납빛 바다
마량 포구에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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