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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대로

겸허 겸양 검소, 부국강병의 헌강왕릉 송림 숲에서...

by 감홍시 2009. 9. 27.

 

 

 

 

 

 

 

 

 

 

헌강왕릉(사적 제187호)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 55

 

신라 49대 헌강왕의 릉(875∼886)으로 왕은 문치(文治)에 힘쓰고 황룡사에 백제좌강을 베풀었다.

민가들은 지붕을 갈대로 덮지 않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나무로 짓지 않고 숯으로 지었으며 거리에 노래소리가 가득한 때였다.

태평성세를 맞이했던 때이며 봉분 밑에 는 장대석으로 4단의 석축으로 축조하였다.

* 연혁(유래)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 김정)을 모신 곳이다. 봉분 높이 4m, 지름 15.8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4단의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 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cm, 너비 128∼9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의 태자로서 문치(文治)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 왕릉 내부가 조사 되었다.(출처 : 한국관광공사)

 

 

정강왕릉(제50대 김황)은 헌강왕릉과 함께 낮은 구릉 능선 갈래에 이어져

형님인 헌강왕릉과 함께 나란히 산자락 낮은 구릉 능선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형인 헌강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병약한 몸으로 인해

통치 1년여만에 세상을 떠나며, 형인 헌강왕릉 옆 구릉에 안장 되었다.

 

 

 

 

 

 

 

 

 

 

 

왕릉을 돌아보며 송림숲 맑은 공기 깊숙이 들여마셔 본다...

 

헌강왕과 정강왕의 왕릉 송림을 걸으며 느껴지는것은

신라의 국치가 드높고 부국강성한 시기의 왕릉 치고는 너무 검소하니...

 

그러고보면, 헌강왕의 치국통치의 이념인

겸양 겸손 검소...의 정신

왕릉에서도 느낄수 있으니...

 

이후 들어 화랑도의 정신이 퇴색되어 가고

신라의 국운이 쇠퇴해져 갔다고 하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왕릉 오르는 길

흙속에 감춰졌던 헌강왕의 고귀한 정신과 겸허함

세월이 흘러 굳은 흙 바닥 나무뿌리

세상에 드러나니...

 

화려하고 멋있는 왕릉보다

더욱 고개가 숙여 진다...

 

 

 

 

 

 

 

 

 

 

이듬해 봄이 오고

개나리와 진달래 필 때엔

 

다시금 맑은 공기속 깊은 숨 들어마시며

새로이 시작하는 한해의 봄 속에서

 

겸허 겸양 검소...

헌강왕 고귀한 정신...

 

.....

 

.....

 

 

 

 

사색에 잠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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