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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어머니와 김광석 거리

by 감홍시 2014. 7. 17.
                올해 72이신 어머니
                  아들과 함께해서 사진을 담아주면, 허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신데도
                  즐거움으로 태그작업을 하며 즐거워 하시는 어머니
                    이번에 보내 드린 사진을 한참 뒤에나 메일로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공을 들여 셨는지
                      눈가에 선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아들과 지인들에게 보내신 편지 내용을 올려 봅니다...^^

                           

                          대구 김광석 거리(정확한 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하루종일 김광석 노래만 흘러나옵니다. 아담한 체구에 귀염성 있는 얼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가객(歌客) 김광석. 대구광역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 길’ 풍경입니다. 김광석씨 사진 ‘김광석 길’이 탄생한 것은 2009년. ‘방천시장 문전성시(文傳成市) 프로젝트’가 김광석을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란 세력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고사성어. 여기서는 음만 같고 한자가 다른 ‘문전성시(文傳成市)’입니다. 문화로 전통시장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로 이정호 경북대 건축과 교수가 시작한 문화예술운동이라고 합니다. 골목길 입구에 있는 기타 치는 김광석 조각상이 보입니다. 김광석(1964~1996) 서른 셋에 죽었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는 매일 수백 명, 주말에는 1만 명 가까운 인파가 골목길 '김광석 길’을 찾는답니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광역시 남구 대봉동(행정구역 변경으로 지금은 중구 대봉동)에서 났습니다. 대봉동은 방천시장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김광석 동상은 입구와 골목길 중간쯤에 있습니다. 조각가 손영복씨의 작품입니다. 방천시장과 김광석 거리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담벼락에는 대형 만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만화가 천명기씨가 그린 방천시장의 역사입니다. 한참 보면 방천시장의 역사가 그려집니다. ‘김광석 길’과 신천과 방천시장이 서로 연관을 이룹니다. 신천은 대구광역시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 하천 둑길은 아래쪽에 전통 재래시장인 방천시장이 있습니다. 방천시장과 둑길 사이의 폭 3m 남짓한 골목길이 350m 정도. 이곳이 바로 ‘김광석 길’입니다. 웃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방천시장 문전성시’취지. 350m의 담벼락을 이정호 교수가 주도하여 김광석과 관련된 전시장으로 한 것입니다. 화가, 삽화가, 시인, 조각가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낙서도 김광석 전시장을 함께 합니다. 익히 알려진 노래들의 노랫말도 적혀 있고 김광석이 남긴 글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림, 이야기 등을 통해서 이 세상에 없는 가수 김광석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시인 정훈교의 시 ‘벽화에 세 들어 사는 남자’도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거리 사람들이 흘리고 간 지문을 지우며 비가 온다. 나른한 오후에 나무가 된 사내는 가을을 지나 나뭇잎 다 떠나보내고 어느 봄꽃이 되어 아파트 열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다. 서른 즈음의 휴식도 잠깐 동안의 불륜이거나 짧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다.’ 커다란 하트 위에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이라고 씌어있는 곳에 앉아 미소를 지어 봅니다. 김광석의 서른세 살에 가면서 남긴 글 ‘인생 이야기’ 중의 일부 입니다. “7년 뒤, 7년 뒤에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 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놓았어요. 이런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상당히 걱정하시데요. ‘다리가 닿겠니?’ 그거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타고 가다가 괜찮은 유럽 아가씨 있으면 뒤에 태우고~. 머리 빡빡 깎고. 금물 이렇게 들여가지고. 가죽바지 입고, 체인 막 감고…. 나이 40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로맨스….” 김광석은 기타를 둘러멘 채 해맑은 미소를 짓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화가 이슬기씨. 이씨는 2010년 당시에는 경북대 미대 재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는 빨리 변해가는 생활 속에서 너무 멀리 가버린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이겠지요! 자물쇠를 잠그면 사랑도 자물쇠처럼 잠겨 영원하답니다. 재미있는 카페 불이 꺼지지 않는 포장마차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27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하나의 벽화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참고 2010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참여한 작가는 곽운호(미술교사), 권기철(화가), 권수정(일러스터), 권혁규(영상설치작가), 김종희(화가), 김환수(그래피티작가), 김태강(디자이너), 류미숙(작가), 박재근(사진작가), 박현미(화가), 손영복(조각가), 송주형(조각가), 신혜영(작가), 오은정(화가), 윤광웅(화가), 윤동희(영상설치작가), 이슬기(미술대학생), 이우열(금속공예가), 이인석(디자이너), 임종진(사진작가), 장병언(화가), 정세용(조각가), 지정현(화가), 천명기(만화가), 최원석(화가), 최주이(그래피티작가), 하원식(조각가). '방천시장 문전성시'라는 프로젝트 때문에 볼거리의 노력으로 침체된 방천시장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방천시장은 1960년대에는 쌀집과 떡집으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소규모의 점포가 약 60여개 남아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대구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방천시장은 다른 전통시장과 달리 둑길 담벼락입니다. 해가 지면 인적이 끊겨 위험한 지역으로 불리기 일쑤였기에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 넣어 방천시장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인적이 드물었던 골목길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느끼려고 밤에 갔는데 이런 것이 없었다면 정말 으시시 하였습니다. 한 길을 따라 쭉 이어져 있는 김광석 거리 2010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예술 감독을 조각가 손영복씨가 맡았다고 합니다. 손영복 작가의 말입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었죠. 벽화를 그려 넣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데 단순벽화는 훼손이 있을 수 있어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 출신 명사를 그려 넣는 것으로 개념을 잡고 인물을 찾다가 옆 동네에서 태어난 김광석을 생각해 낸 겁니다.” 재미있는 디자인의 의자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쳐가던 중 1996년 1월6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김광석 거리 이등병의 편지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는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남녀노소 모두 골목길을 즐깁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감정을 노래했습니다. '김광석 길'에는 생전에 그를 본 적이 없는 20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김광석 길’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 간간이 장년층도 있다고 합니다. ‘김광석 길'이 워낙 알려져서 외지인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제는 대구 최고의 볼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덕에 방천시장도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방천시장 문전성시’ 총감독 이정호 교수의 설명입니다. “김광석의 음악에 자신을 투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어디엔가 있을 사랑을 기다리며, 때로는 너무 아픈 사랑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마음을 들었다. 누군가는 입영영장을 받고서, 또 누군가는 서른이 되어서야 그의 음악을 진정 느꼈다. 쉽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김광석의 음악이 영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멀리 가버린 그 사람이 그토록 그리운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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